GOD IS LOVE

시스템의 문제로 영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대신 설교원고를 올려드립니다. 많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 고레스?

 

이사야 45장 1~8절

1)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조금 섣부르긴 하지만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곳 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에 교회 주변을 돌아보니 가족끼리 실개천에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고 술집과 카페에서 모임을 하는 사람도 참 많았습니다. 아직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벗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할 수 없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여전히 있지만 그래도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운동회를 하지 않습니까?

 

요즘같은 분위기가 더 반갑고 즐거운 것은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이 한 번에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갇혀 살다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또 자영업자나 직장인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죠.

 

교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모여야 할 성도들이 흩어졌고 찬양과 기도에도 제약이 생겼습니다. 텅빈 예배실이 더 익숙했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교회에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판의 화살을 쏜 것이죠. 그러고보면 어려운 시간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예배를 지키는 여러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 분들은 정치적인 탄압이라고 하며 저항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신앙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다른 쪽에선 사회공동체를 배려하지 못한 이기적 신앙의 결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고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면에서 이 문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또다른 의미는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말씀에 나오는 고레스 왕은 유다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 제국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역사에는 키루스2세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번역을 고레스라고 한 것입니다. 고레스의 인상 깊은 정책 중 하나는 각 나라의 문화와 언어와 종교를 존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앗수르나 바벨론의 정책과는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산산조각내거나 혼합시키는 정책으로 정복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성하기만 한다면 나머지에 대해선 관용을 베푸는 쪽으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는 것도 고레스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에는 이런 고레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선 대단히 충격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1장 25절

25)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땅으로 돌아오게 할 사람으로서 북쪽에서 한 인물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모세나 다윗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 입니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인물의 이름을 듣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28절

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구약에서 목자라고 하면 제일 먼저 누가 떠오릅니까? 다윗이죠? 그런데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을 부흥케하고 회복시킬 왕이 고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본문을 보면 고레스를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메시아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할 때 그 그리스도가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누구입니까? 고레스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죠. 다윗 왕과 같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는 당연히 이스라엘 중에서 나와야 합니다. 목자라는 표현이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 같은 말은 그동안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 다윗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에게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그런 귀한 자리를 이방인이 차지해선 안되지 않습니까? 특히 45장 4절 후반부에 보면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사용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되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일단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봅시다.

 

이사야 45장 4절

4)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가장 먼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레스를 사용하시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포로생활을 끝내고 나라를 회복시키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말씀을 보고나서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이사야 45장 3절

5)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지금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읽으셔야 합니다. 어떤 말씀이냐면 고레스가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불러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미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죠? 고레스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6절

6)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6절에도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데 해 뜨는 곳에서 부터 지는 곳 까지, 그러니까 온세상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온세상에 한 분이신 하나님을 알리는 것은 사실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애굽의 아래서 노예로 살았던 민족,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엔 한참 모자란 민족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길러내십니다. 그렇게 해서 온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우상을 섬기는 세상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알려야 할 이스라엘이 자기 역할을 망각하고 세상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오히려 하나님을 알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명되겠습니까? 우상과 똑같은 하나님이라면 굳이 하나님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증명하실까요? 능력으로 증명하실까요? 조금 다르게 설명해 봅시다. 교회는 어떻게 세상 속에서 빛이 납니까?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죠? 교회가 희망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교회가 자기를 증명할 수 있을 때는 교회가 교회다울 때입니다. 가장 교회다울 때는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이 되고 빛이 없는 곳에 빛이 될 때 입니다. 아무도 섬기지 않는 곳에서 섬기고 생명 없는 곳에 생명이 될 때 입니다.

 

지난 주 주일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독특한 이유를 영원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시죠? 세상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넉넉함으로 이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영원한 가치와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희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굉장히 억울한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남을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는 것 아닙니까? 내 책임이 아닌데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내가 잘못한게 아닌데 내가 수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내 책임이 아니면 나몰라라 하고 내 책임이라도 가급적이면 남에게 미루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못했다간 손해를 보는데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이라서 손해를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손해는 손해가 아닙니다. 영원한 것을 가졌으니 손해가 영광이 됩니다. 기꺼이 손해를 당함으로 내가 가진 영원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가장 빛날 때는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입니다. 세상의 상식을 깨고 들어올 때 가장 빛이 납니다. 그것이 영원한 소망으로 사는 것이죠. 같은 색깔로 빛을 내면 티가 안납니다. 세상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크고 많은 것 아닙니까? 교회가 큰 건물을 자랑하고 많은 재산과 숫자를 자랑하면 그 순간 세상이 조롱을 합니다. 그런 것은 세상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겨우 그런 것을 자랑하느냐면서 교회가 자랑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자랑할 것입니다. 건물을 자랑하면 더 큰 건물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면 더 큰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상식을 깨고 들어올 때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도 세상의 상식을 깨면서 자신을 증명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으로 가봅시다. 

 

마태복음 1장 1절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로 시작을 합니다. 보통 족보를 자랑할 땐 벼슬도 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을 앞세우기 마련입니다. 족보를 가지고 있다면 한 번 살펴보십시오. 다 대감이고 정승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선시대 인구 중에서 노비의 비율이 40%가 넘었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의 조상 중에는 분명히 노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노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안합니다. 그런 것은 자랑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시작하는 족보라면 이스라엘에겐 왕족으로 불릴 수 있는 아주 대단한 족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하게 보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상식을 깨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족보를 가만히 들여다 보시면 재미있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족보는 남자이름이 있죠.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남자이름이 나오는데 갑자기 여자이름이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3절에 다말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합니다. 다말이 누구입니까? 유다의 며느리로서 성전의 창기로 위장하여 유다와 관계를 맺은 여인입니다. 자랑할만한 일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라합니다.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창기였습니다. 그 뒤에는 룻이 나옵니다. 룻도 이방인입니다.

 

하이라이트는 6절에 나오는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선 여인의 이름이 나오는대신 우리야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남의 여자를 빼앗아서 아이를 낳은 아주 나쁜 인간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계보는 이스라엘이 자랑할만한 역사라는 상식을 깨고 부끄럽게 하셨으며, 또 부끄럽고 부정한 것에서 훌륭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상식을 깨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상식을 깨고 오십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상식을 깨뜨려서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칼과 권력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상식을 깨뜨려서 사랑으로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낸 상식의 파괴가 있습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부정해 버립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으로 세상과 다를바 없었던 나를 변화시킨 은혜, 죄인에 불과한 나를 아무 조건없이 용서한 은혜를 만나서 상식이 모두 깨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레스 왕은 구원자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율법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자로 나설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상식을 하나님께서 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선을 긋고 정죄했고 하나님의 백성됨을 세상 권력 중 하나로 사용을 하자 그들의 상식을 깨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교회가 힘들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기도하는 소리도 줄어들었습니다. 코로나 시대 이후로 20~30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10대는 처참한 수준입니다. 우리교회의 몇 배나 큰 교회에 중고등부가 없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살아남기에도 급급한 그런 입장이 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교회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대와 코로나가 힘을 합쳐서 결국 교회가 쓰러지게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 상식을 깰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사람의 눈으로 볼 땐 이 시대와 코로나가 절망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상식을 깨고 올 것이라는 기대감입니다. 희망이 없는 바로 지금,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곳에서부터 상식을 깨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저에게 있습니다.

 

고레스를 통해 자신의 일을 해내신 하나님께서 절망과도 같은 코로나를 통해서도 일을 하실 것입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어진 교회의 껍데기를 벗겨내실 수도 있습니다. 게으른 우리의 믿음을 깨어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행함이 없고 순종없이 머리만 커진 신앙, 비판만 잘하는 신앙에서 떠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일하실지, 그 때가 언제인지 다 알 수 없으나 코로나 이후 이제 교회는 죽을일만 남았다는 상식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깨어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이 증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상식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여 상식을 깨뜨리는 교회가 되도록 뜨겁게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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